국립고궁박물관로고

국립고궁박물관조선왕실의 문화를 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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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 - 5 대한제국

국립고궁박물관의 5 대한제국실 입니다.

5 대한제국

정조 사후 세도정치로 사회 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 즉위한 고종은 1875년의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1876년 개항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880년 외교·통상업무를 강화하고자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설치하여 개화를 주도하였다.

고종은 대내외에 독립국가로서의 위상을 알리고 대제국의 건설을 이룩하기 위하여, 1897년 연호年號를 ‘광무光武’, 국호國號를 ‘대한大韓’이라 정하고 황제즉위식을 거행하여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대한제국 선포를 전후하여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 등 전면에서 근대화를 위한 일련의 노력이 있었다. 일본·미국·유럽을 통해 전기·철도·우편 등의 신기술과 문화가 유입되었고 이를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고 말았으나 대한제국기의 이러한 경험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적 자긍심을 유지하고 광복 이후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5 대한제국 - 대표유물

고종황제 어새와 함

고종황제 어새와 함 高宗皇帝御璽·寶筒 시대: 대한제국大韓帝國 보물 제1618호 고종황제가 친서親書에 사용한 대한제국의 국새와 이것을 담는 함이다. 손잡이는 거북이 형태이며, ‘황제어새皇帝御璽’라고 새겨져 있다. 황제어새는 러일전쟁 이후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각국에 대한제국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는 비밀 친서에 사용되었다.

서성대훈장

서성대훈장 瑞星大勳章 시대: 대한제국大韓帝國 서성대훈장은 1902년(광무 6) 8월에 제정한 훈장으로, 훈등은 등급이 없는 대훈위大勳位에 해당한다. 황족 출신의 문무관 중에서 이화대훈장李花大勳章을 받은 자가 특별한 훈공이 있을 때 수여하였다. 정식 훈장인 정장正章은 어깨에서 허리에 걸쳐 드리우는 보라색 바탕의 큰 수綬에 달려있다. 대수 아래쪽에는 오얏꽃 모양을 접어 부착하였다. 대수정장 외에도 가슴에 다는 부장副章, 예복의 옷깃 단추 구멍에 걸어서 다는 약수略綬가 있다.

명성황후 책봉 시 올린 금보

명성황후 책봉 시 올린 금보 明成皇后金寶 시대: 대한제국大韓帝國, 1897년 1897년(광무 1)에 만든 명성황후의 어보이다. 인면에는 ‘황후지보皇后之寶’라고 새겨져 있다. 고종이 황제로 즉위할 때 왕후 민씨를 황후로 책봉하면서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거북이 모양의 옥보였지만, 대한제국 시기에는 용의 형상을 한 금보로 제작되었다.

고종황제 즉위 40주년 기념 잔치를 기록한 의궤

명성황후 국장 과정을 기록한 의궤
明成皇后國葬都監儀軌
시대: 대한제국大韓帝國, 1898년 보물 제1901-3호 대한제국 선포 이후 명성황후의 국장 진행 과정과 이를 주관했던 국장도감의 운영에 관해 기록한 책이다. 명성황후는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으로 일본인에게 시해당한 뒤,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1897년(광무 1)에 이르러서야 황후로 추존된 후 성대하게 국장을 치렀다.

명헌태후의 고희(71세) 기념 잔치를 그린 병풍

명헌태후의 고희(71세) 기념 잔치를 그린 병풍 辛丑進饌圖屛風 시대: 대한제국大韓帝國, 1901년 1901년(광무 5) 신축년 5월에 열린 명헌태후[헌종 계비 효정왕후] 71세 기념 잔치를 그린 10폭 병풍이다. 조선시대 궁중의례의 전형적인 형식을 따르면서도 대한제국기의 변화가 확인된다. 제1, 2폭은 경운궁 중화전(현 덕수궁 즉조당), 나머지 폭은 준명당에서 열린 잔치 모습으로 황제국의 격식에 맞춘 황색의 평상과 접이 의자 등이 나타나고 특히 제2폭에는 대한제국 국가 상징 깃발인 태극기가 배치되었다.

명성황후 책봉 시 올린 금책

명성황후 책봉 시 올린 금책 明成皇后金冊 시대: 대한제국大韓帝國, 1897년 1897년(광무 1) 고종황제가 왕비 민씨를 황후로 삼으면서 금보와 함께 제작한 금책이다. 조선시대에는 옥으로 만든 옥책을 하사하였으나 황제국의 격식에 따라 금책을 제작하여 하사하였다. 형태는 명나라 도식에 근거한 것이며 두 개의 판에 구멍을 뚫어 붉은 끈으로 연결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끈은 남아있지 않다.

경운궁 현판

경운궁 현판 慶運宮懸板 시대: 대한제국大韓帝國, 1905 덕수궁의 옛 이름인 경운궁의 현판으로 경운궁의 즉조당卽阼堂에 걸려있었다. 글씨는 고종의 어필이다. 고종이 1896년 아관파천 후 경운궁으로 돌아와서 중화전을 신축하기 전까지 경운궁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였다.

호조태환권을 찍은 틀

호조태환권을 찍은 틀 戶曹兌換券原版 시대: 조선朝鮮, 1893년 호조태환권은 우리나라 최초의 지폐이자 신·구 화폐를 교환할 수 있는 화폐 교환 증서이다. 근대적 화폐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신·구 화폐의 교환업무를 담당했던 태환서兌換署에서 발행하였다. 5냥권, 10냥권, 20냥권, 50냥권 등 총 4종의 태환권兌換券을 구 화폐(엽전)와 교환하고, 이를 다시 신화폐(은화 또는 동화)와 교환하고자 하였으나 운영상의 문제로 실제 발행되지는 못하였다.

영친왕 유년기 부장 예복

영친왕 유년기 부장 예복 英親王副將禮服 시대: 20세기 초 영친왕이 입었던 군복으로 육군 부장副將 예복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겉은 홍색의 융이고, 안쪽은 홍색의 공단으로 제작되었다. 앞면은 오얏꽃 모양의 장식과 매듭단추가 장식되어 있다. 소매에 부착된 ‘人’자형 금색 수장袖章의 개수로 신분을 나타내는데 부장은 8줄이다.

5 대한제국 - 전시공간

1층 5 대한제국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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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한제국 - V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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