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어제고경중마방
御製古鏡重磨方
※ 해제
어제고경중마방(御製古鏡重磨方)은 이황(李滉, 1501~1570)이 여러 성현들의 잠명(箴銘) 중에서 심신 수양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뽑아 엮은 것으로, 1744년(영조 20) 정구(鄭逑)가 간행하였다.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이란, ‘옛 거울을 거듭 갈고 닦는 묘방’이라는 의미이다. 이 책은 이황이 59세 때 벼슬을 사직한 후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1607년(선조 40)에 제자인 정구가 이를 간행하면서 문인들에 의해 널리 읽혀졌다. 그 후 1744년에 영조가 이 책을 다시 간행하여 세자를 교육하고자 하면서 왕실의 수양서가 되었다.
권수에는 김재로(金在魯)가 쓴 어제고경중마방편제(御製古鏡重磨方篇題)와 영조의 어제어필시(御製御筆詩)가 실려 있다. 편제에는 세필(細筆)로 구결(口訣)이 부기(附記)되어 있다. 이 책의 편제와 어제시를 지은 과정은 당시의 실록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영조실록 1744년 3월 5일자 기사에 따르면, “이에 앞서 임금이 직접 고경중마방의 편제를 지어 운각(芸閣)으로 하여금 간포(刊布)하게 하고 춘방(春方)의 관원에게 명하여 고경중마방을 동궁(東宮)의 좌병(坐屛)에 써서 올리라고 명하였다. 이 책은 곧 선정신(先正臣) 이황이 찬집한 것이다. 이 때에 이르러 또 춘방의 관원들을 불러 어제시 한 수를 내렸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이 때 지은 시는 본 책에 그대로 수록되어 있는데, 원문은 다음과 같다. ‘거울을 닦고 마음을 연마하는 데는 자연히 방법이 있으나, 마음과 거울은 본디 밝고 빛이 나는 것이니, 명도(明道)와 이천(伊川)은 바로 정로(正路)이며 회암(晦菴)과 궐리(闕里)는 곧 본향(本鄕)이라네[磨鏡磨心自有方, 心曰鏡本明光, 明道伊川乃正路, 晦菴闕里是本鄕].’ 여기에서 명도와 이천은 곧 송대 철학자인 정호(程顥)와 정이(程頣)를, 궐리는 공자가 거주했던 산동성(山東省) 곡현(曲縣)의 땅 이름을 의미한다. 어제시의 뒤에는 “주자의 운을 사용했으며, 직접 짓고 직접 썼다[用朱子韻, 自製自筆]”라고 기록되어 있다.
본문에는 중국 고대의 성왕(聖王)인 은탕(殷湯)의 반명(盤銘)을 시작으로 해서 당송(唐宋)대의 명현인 한유(韓愈)의 오잠(五箴), 정자(程子)의 사물잠(四勿箴) 등 25명의 잠명 76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주자(朱子)의 글이 22편으로 가장 많고, 장식(張栻), 오징(吳澄)의 글을 각각 10편, 7편 수록하였다. 또한 경재잠(敬齋箴) 등 경(敬)에 대한 글이 많이 실려 있어, 퇴계 사상의 근간이 ‘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에는 주희(朱熹)가 「임희지(林煕之)를 전송하며」 지은 칠언시의 첫 수와 이 시에서 본 책의 뜻을 취했다는 내용의 해설, 그리고 책의 요지를 밝힌 이황의 오언시와 이를 해설한 정구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 뒤에는 행서(行書)로 필사한 「柳謙菴遺訣(유겸암유결)」과 「李書九氏秘訣(이서구씨비결)」이 묵서되어 있다.
본 책은 서울대학교 규장각(奎1584),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Asami 26.17) 등에 소장되어 있다. 퇴계 이황의 사상적 근간과 영조대의 왕실 교육 문화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목차
- 篇題
- 御製詩
- 目錄
- 本文
- 跋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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