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수교완문(완원군 후손 면역)
受敎完文(完原君 後孫 免役)
※ 해제
수교완문(受敎完文)은 조선 후기에 종친부에서 완원군(完原君)의 후손에게 군역을 면제한다는 내용을 담아 간행한 것이다. 권수의 간기를 통해 이 완문이 지평(砥平)에 거주하는 완원군의 12대손 이운춘(李雲春)과 13대손인 이필근(李弼根)에게 발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발급 일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완원군은 성종의 아들로, 어머니는 숙의 홍씨(淑儀洪氏, ?~?)이다. 1489년(성종 20)에 완원군으로 봉해졌으며, 1494년(연산군 즉위)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아침 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리는 등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완문의 내용은 1749년(영조 25)부터 1789년(정조 13), 1800년(정조 24), 1811년(순조 11), 1815년에 내린 수교들과 속대전(續大典)에 실려 있는 조항을 근거로 하여, 선파(璿派) 자손의 군역은 대수(代)를 제한하지 말고 면제할 것을 명하고 있다.
그리고 1860년(철종 11)에 종친부에 명하여 선원각파세보(璿源各派世譜)를 구례(舊例)에 따라 수정하라고 하여, 선묘조 이하 13파가 이미 교정되었으며 1861년(철종 12)에도 이어서 여러 파의 속보를 속히 수정하도록 하였다. 1864년(고종 즉위)에는 여름 4월에 태묘에 나아가 제사를 드리면서 선파의 자손들을 불러 접견하면서, ‘매년 정월에 태묘를 알현할 때와 제사할 때, 선파의 자손들은 예에 따라 참여하도록 할 것을 일정한 규식으로 정한다.’는 내용의 명을 내린 사실 등을 밝혀주었다. 위 내용은 발급 시기와 대상이 다른 면역 완문에서도 동일하게 수록해 주고 있다.
완문의 후반부에는 선파의 후예들이 지금 혹 팔도에 두루 퍼져 있고 읍마다 존재하지만 혹 학문을 하지 못하고, 혹 밭을 갈거나 산에서 채집하며 살아가는 등 상민과 다름없이 되어버린 자가 많지 않으니 진실로 슬프고 가련함을 말하였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앞 뒤의 성스러운 교훈을 받들어 새로운 규정을 완비하니, 잡역(雜役)과 여러 종류의 천역(賤役)에 관련된 모든 일은 사목(事目)에 따라 영원히 침범하지 말도록 한다.”는 내용을 강조하였다. 위 내용은 발급 시기와 대상이 다른 면역 완문에서도 동일하게 수록해 주고 있어, 면역 완문의 정형(定型)을 따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수교완문은 고종 초반에 왕권을 강화하고 선파의 후손들을 보호함으로써 혼란했던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시행되었던 조치의 하나로, 조선 말기의 정치·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자료로 그 가치가 있다. 이 가운데 효령대군 후손의 면역과 관련한 책자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소장기호 : 奎古853)과 본관 소장본(고궁 907) 등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완원군의 후손에게 발급된 것은 유일본으로 추정된다.
※ 목차
- 刊記
- 本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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