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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예약
소장품 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선원속보-덕천군파

璿源續譜-德泉君派

※ 해제

 

󰡔선원속보(璿源續譜)󰡕는 조선 왕실의 종합 족보로, 각 왕의 왕자를 파조(派祖)로 삼은 파보를 모아 놓은 것이다. 본 유물은 1902(광무 6)에 종정원에서 일괄 편간한 것으로, 조선 2대 군주인 정종(定宗, 재위 1398~1400)10남인 덕천군(德泉君, 1397~1465)의 후손을 기록한 파보이다. 21책이다.

 

󰡔선원속보󰡕의 수록 범위는 전주이씨 전체로서, 각 파별로 파조(派祖)가 되는 대군이나 군 이하의 당시까지 생존한 사람들까지 포함되었다. 파보는 각 파의 문장(門長)이 주관해 각 지역의 족파로부터 단자(單子)를 받아 근거 자료로 이용했다. 1860(철종 11)에 작성되기 시작하여 1867(고종 4)에 비로소 완성되으나, 이 책이 주로 간행된 것은 그 이후인 1900년에 이르러서이다. 이를 주관한 곳은 종친부(宗親府-대한제국기에는 종정원)였으며,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덕천군의 이름은 후생(厚生)으로, 아버지 정종과 찬성사 지윤(贊成事 池奫)의 딸인 어머니 성빈 지씨(誠嬪 池氏) 사이의 첫째 아들이다. 슬하에 46녀를 두었으니 장남 신종군(新宗君), 차남이 부윤도정(富潤都正), 3남 운수군(雲水君), 4남 송림군(松林君)이다. 장녀는 창녕 성씨 찬()에게 출가하였는데, 그의 차남인 성희안(成希顔, 14611513)은 중종반정의 주역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었으며, 이 때 외숙인 운수군과 외사촌인 안현군(安賢君)을 반정에 참여케 하여 다 같이 공신이 되었다. 1460년 덕천군으로 봉군되었으며, 시호는 적덕(積德)이다. 덕천군파는 세종특별자치시의 장군면 태산리를 중심으로 번성했다.

 

1의 권수에는 매 항마다 세주로 생몰년과 과환(科宦) 이력, 절행(節行)과 증시(贈諡), 장지(葬地)를 기록한다.”, “간지는 숭정(崇禎) 이전의 것은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고, 그 이후에는 조선의 연호를 사용하며 광무 연호 이후에는 광무로 기록한다.”, “매 장의 끝마다 천자문의 원문으로 자호로 써서 열람하는 데 편리하게끔 한다.”라는 조항 등 총 14항의 범례를 수록하였다.

 

이어서 권1~21에 걸쳐 본문격인 세계(世系)가 수록되어 있는데, 범례에 나와 있는 내용을 기본 토대로 하여 작성된 점을 살펴볼 수 있다. 본 책에는 덕천군의 자손인 효백(孝伯)을 시작으로 하여 20대손 원연(元淵)의 출생년까지 기록되어 있으며 권말에는 이 책의 간행에 참여한 자들의 명단을 기록해 주었다. 당시의 종손은 유학 이상구(李象九)이며, 문장(門長)은 관찰사 이규원(李奎遠, 1833-1901), 도유사(都有司)는 전() 현령 이상돈(李象暾)이다. 교정을 담당한 자들은 유학 이가원(李可遠) 8명이며, 선서(繕書)를 맡은 자들은 이건호(李建鎬) 4명이었다.

 

본 책은 주로 20세기 이후에 간행된 󰡔선원속보󰡕의 전형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덕천군파 후손들에 대한 인물 정보를 상세히 수록하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소장기호 :K2-1144)에도 동일본이 소장되어 있으며 본관 소장 유물인 <선원속보 완원군파(璿源續譜 完原君派)>(고궁 1116) 등과 참고가 된다.

 

※ 목차

 

- 凡例

- 世系(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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