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선원속보-덕흥대원군파
璿源續譜-德興大院君波
※ 해제
선원속보(璿源續譜)는 조선 왕실의 종합 족보로, 각 왕의 왕자를 파조(派祖)로 삼은 파보를 모아 놓은 것이다. 본 유물은 1861년에 종부시에서 편찬한 것으로, 조선 11대 군주인 중종의 7남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1530~1559)의 후손을 기록한 파보이다. 총 3책이다.
선원속보의 수록 범위는 각 파별로 파조(派祖)가 되는 대군이나 군 이하의 당시까지 생존한 사람들까지 포함되었다. 파보는 각 파의 문장(門長)이 주관해 각 지역의 족파로부터 단자(單子)를 받아 근거 자료로 이용했다. 1860년에 작성되기 시작하여 1867년에 비로소 완성되으나, 이 책이 주로 간행된 것은 그 이후인 1900년에 이르러서이다. 이를 주관한 곳은 종친부(宗親府)였으며,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덕흥대원군의 이름은 초(岹)이며, 자는 경준(景樽)이다. 중종과 후궁인 창빈 안씨(昌嬪安氏)와의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9살 때 덕흥군(德興君)에 봉해졌으며, 13살 때 정인지(鄭麟趾)의 손자인 판중추부사 정세호(鄭世虎)의 딸과 가례를 올렸다. 그 사이에서 선조를 포함한 아들 3명과 딸 1명을, 첩 사이에서 딸 1명을 더 얻었다. 1559년(명종 14)에 병으로 죽었다. 1567년(명종 22)에 명종이 후사 없이 죽자, 그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河城君) 이균(李均)이 즉위하여 선조가 되었고, 1569년(선조 2) 11월 1일에 덕흥대원군으로 추존되었다.
권 1의 권수에는 “매 항마다 세주로 생몰년과 과환(科宦) 이력, 절행(節行)과 증시(贈諡), 장지(葬地)를 기록한다.”, “간지는 숭정(崇禎) 이전의 것은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고, 그 이후에는 조선의 연호를 사용한다.”, “무릇 형제의 문파는 한 편을 이루고 한 편을 모아 한 권을 이루므로, 매 편 매 장의 끝마다 천자문의 원문으로 자호로 써서 열람하는 데 편리하게끔 한다.”라는 조항 등 총 15항의 범례를 수록하였다.
이어서 권1~권3에 걸쳐 본문격인 세계(世系)가 수록되어 있는데, 범례에 나와 있는 내용을 기본 토대로 하여 작성된 점을 살펴볼 수 있다. 본 책에는 덕흥대원군의 자손인 하원군(河原君) 이정(李鋥)을 시작으로 하여 10대손 주식(周植)의 출생년까지 기록되어 있으며 권말에는 이 책의 간행에 참여한 자들의 명단을 기록해 주었다. 당시의 종손은 참봉 이익주(李益周)이며, 문장(門長)은 호군(護軍) 이상식(李相植), 교정을 담당한 자들은 유학 이윤식(李胤植), 이환(李煥), 이시용(李時瑢)이며, 선서(繕書)를 맡은 자는 이빈이었다.
본 책은 선원속보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간행된 것이며, 덕흥대원군파 후손들에 대한 인물 정보를 상세히 수록하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소장기호 :K2-1145)에도 소장되어 있는데 이는 1900년(광무 4)에 간행된 이해창(李海昌) 편 5책 본으로, 본 유물보다 약 35년 뒤에 제작된 것이다. 본관 소장 유물인 <선원속보 덕천군파(璿源續譜 德泉君派)>(고궁 132) 등과도 참고가 된다.
※ 목차
- 凡例
- 世系(권1~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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