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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보
장조 추상시호 금보
莊祖 追上諡號 金寶
-
유물번호
종묘13709 -
연대
1899(광무3) -
재질
금속 -
크기(cm)
세로: 9.7, 가로: 9.8, 높이: 7.6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장조 추상시호 금보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제작년도: 광무 3년(1899)
보문내용: 神文桓武 莊獻廣孝 大王之寶
어보에는 왕과 왕비의 덕을 기리는 존호(尊號)와 돌아가신 후 공덕을 칭송하는 시호(諡號)등을 새겼는데 추가로 존호나 시호를 올릴 때마다 어보를 새로 제작하였다. 또 묘호(廟號)를 새길 경우에는 맨 앞에 새겼다.
광무 3년(1899)에 '신문환무 장헌광효(神文桓武 莊獻廣孝)'라는 시호를 올리고 만든 장조의 금보이다. 장조는 이복형인 효장세자[후에 진종으로 추존]가 요절한 후 영조의 나이 40세가 넘어서 출생하여 1년만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이후 뒤주에 가두어 8일만에 돌아가시게 하였다. 영조는 장례 때 친히 나아가 스스로 신주(神主)에 제주(題主)를 하면서 나라를 위하여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알리기도 하였으나 곧 뉘우쳐 위호(位號)를 복위시키고 사도(思悼)의 시호를 내렸다. 1776년 정조(正祖)가 장헌(莊獻)으로 추존하고 광무(光武) 3년(1899) 고종이 장조(莊祖)로 추존하였다.
보문내용: 神文桓武 莊獻廣孝 大王之寶
어보에는 왕과 왕비의 덕을 기리는 존호(尊號)와 돌아가신 후 공덕을 칭송하는 시호(諡號)등을 새겼는데 추가로 존호나 시호를 올릴 때마다 어보를 새로 제작하였다. 또 묘호(廟號)를 새길 경우에는 맨 앞에 새겼다.
광무 3년(1899)에 '신문환무 장헌광효(神文桓武 莊獻廣孝)'라는 시호를 올리고 만든 장조의 금보이다. 장조는 이복형인 효장세자[후에 진종으로 추존]가 요절한 후 영조의 나이 40세가 넘어서 출생하여 1년만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이후 뒤주에 가두어 8일만에 돌아가시게 하였다. 영조는 장례 때 친히 나아가 스스로 신주(神主)에 제주(題主)를 하면서 나라를 위하여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알리기도 하였으나 곧 뉘우쳐 위호(位號)를 복위시키고 사도(思悼)의 시호를 내렸다. 1776년 정조(正祖)가 장헌(莊獻)으로 추존하고 광무(光武) 3년(1899) 고종이 장조(莊祖)로 추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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