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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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문화
조선시대에 과학은 통치자의 정당성을 보이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수단이었다. 국왕은 부국강병과 민생안정을 위해 천문, 농업, 의학, 무기제조 등 과학기술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그중에서도 천문학天文學은 제왕의 학문으로 여겨졌다. 하늘의 여러 현상을 살펴 절기와 시간을 알려주는 천문학을 통해 백성들이 때에 맞춰 농사를 짓고 생업에 힘쓰게 했으며 국왕의 통치가 하늘의 뜻에 따른 것임을 드러냈다. 조선 건국 초기부터 국왕은 중국 천문 과학기구와 역법曆法을 연구하고 이를 조선 실정에 맞추어 쓸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앙부일구나 자격루 같은 조선만의 독창적인 기구들이 만들어지는 등 높은 과학적 성취가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에도 서양 과학기술을 받아들이는 등 과학 발전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과학문화 - 대표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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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782년측우대 測雨臺
비가 내린 양을 재는 측우기의 받침대이다. 1441년(세종 42) 측우기와 측우대를 처음 만들고 전국에 설치하여 강수량 측정을 제도화했다. 측우 제도는 임진왜란 등 전란을 겪으며 중단되었다가 1770년(영조 46)에 재정비되었다. 이 측우대는 1782년(정조 6) 제작하여 창덕궁 이문원摛文院(규장각 부속건물)앞에 설치하였던 것이다. 측우대 4면에는 측우기를 세우게 된 연원과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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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732년규정각 현판 揆政閣 懸板
경희궁 흥정당興政堂 동쪽에 있던 규정각의 현판이다. 규정각은 1732년 영조의 명에 따라 혼천의를 보관 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규정각을 지은 경위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천문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영조가 지은 글을 새긴 <규정각기揆政閣記> 현판도 함께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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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일성정시의 日星定時儀
1437년(세종 19) 세종의 명으로 제작한 시계이다. 낮에는 해의 움직임을, 밤에는 별의 움직임을 관측해 시간을 측정했던 기구다. 그동안 일성정시의 형태와 구조는 문헌 자료를 통해 유추해 왔으나, 2021년 인사동에서 유물 일부가 출토되어 그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출토된 부분은 시간을 보정하는 역할을 하는 장치인 주천도분환, 별시계에 해당하는 성구백각환, 해시계에 해당하는 일구백각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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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654~1713년앙부일구 仰釜日晷
해 위치에 따라 변하는 그림자 위치를 읽어 시각과 절기까지 알 수 있도록 만든 시계다. 앙부일구는 세종대에 처음 만들어져서조선 후기까지 다양한 재료와 형태로 제작되며 널리 활용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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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536년창경궁 자격루 昌慶宮 自擊漏
1536년(중종 31) 제작된 물시계 자격루의 일부이다. 물을 흘려보내는 청동 항아리인 파수호 3점과 물을 받는 원통형 그릇인 수수호 2점이 남아 있다. 자격루는 용기에 일정한 속도로 흘러드는 물의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로, 세종대에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를 더해 처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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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395년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하늘의 모습을 구역을 나누어 배열해 놓은 천문도로 돌에 새겨 만들었다. 조선 건국 이전부터 전해져 오던 석각 천문도의 탁본을 바탕으로, 달라진 별자리 위치 등을 보정해 만들었다는 제작 경위가 새겨져 있다. 태조는 천문도를 제작함으로써 천문을 살피고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여 이를 백성에게 알리는 관상수시觀象授時의무를 실현하고, 조선 건국이 하늘의 뜻에 따른 것임을 알리고자 했다. 천문도 가장 안쪽 원 안에는 북두칠성처럼 1년 내내 볼 수 있는 별자리를, 바깥쪽에는 계절별로 바뀌는 별자리를 그렸다. 별 크기와 깊이를 다르게 표현하여 밝기 차이를 나타냈다. 세월이 지나 태조 대 각석이 닳자 1687년(숙종 13)에 새로 새긴 것도 전한다.
과학문화 - 전시해설
과학문화 - 전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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