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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 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사천흥사리매향비문

泗川興士里埋香碑文

※ 해제


사천흥사리매향비문(泗川興士里埋香碑文) 1387(고려 우왕 13)에 세워진 사천 흥사리 매향비의 비문을 탁본한 것이다. 사천 흥사리 매향비는 197838일에 보물 614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산48-2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비문은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 위에 17204자를 새겼는데, 표면의 굴곡으로 인해 글자수와 크기가 제각각이다. 이는 반듯하고 정갈하게 다듬은 비석에 행자수를 맞추어 기록한 여타 비문과는 같지 않은 점이다.


비문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려 시대 후기 혼란한 사회가 지속되고 있던 가운데 승려를 중심으로 한 4100여 명이 계()를 조직하여 임금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평안, 백성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이곳에서 매향(埋香) 의식을 치루고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비문을 세웠다는 것이다.


매향이란, 내세(來世)의 발원(發願)을 위하여 14~15세기에 주로 이루어진 향촌 공동체의 신앙 활동의 일종이다. 이는 본래 침향(沈香)을 만들기 위해 강이나 갯벌에 향나무 등을 묻어두는 것을 의미했으나, 점차 미륵불의 용화회(龍華會)에 공양할 침향을 마련하기 위한 종교적인 행위로 변화되었다. 매향 의식이 끝난 후에는 이 과정과 관련 인물 등을 기록하여 매향비를 세웠는데, 본 유물 또한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현전하는 매향비 가운데 하나이다.


비문의 끝 부분에는 洪武卄年丁卯八月卄八日埋, 達空, 刻 金用, 書 守安, 大化主覺禪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이 비석을 세운 날짜가 1387(홍무 20) 828일이며, 비문을 지은 사람은 승려 달공(達空), 글씨는 수안(守安)이 썼으며 이를 새긴 사람은 김용(金用), 이 의식을 주관한 사람은 대화주(大化主) 각선(覺禪) 임을 알 수 있다.


달공(생몰년 미상)은 고려 말의 선승(禪僧)으로, 그의 행적에 관한 사실은 자세하지 않다. 일찍이 출가한 후 중국을 거쳐 고려에 온 인도의 승려 지공(指空, Dhyānabhadra)에게서 배웠다고 전해지며, 선문답(禪問答)에 관한 저술인 『법어집(法語集)』을 남겼다.


본 유물은 현전하는 국내의 매향비 가운데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사천 흥사리 매향비의 비문을 탁본한 자료로, 이를 통해 고려 후기 불교 의식의 일단면을 볼 수 있다. 또한 비문 속에 발원 내용과 목적, 주도 조직, 비석의 건립 연대, 찬자 및 서사자, 화주 등이 명확히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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