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영조)어제갱진첩
(英祖)御製賡進帖
※ 해제
(영조)어제갱진첩(英祖御製賡進帖)은 영조가 1759년(영조 35)에 영화당명(暎花堂銘) 한 구를 짓고 이에 대해 신하들이 화운(和韻)한 시를 모은 첩이다.
이 첩이 지어진 시기는 영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의 기사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영조실록 1759년 8월 1일 기사를 보면 ‘上御春塘臺觀武才, 親製映花堂銘一句, 命侍臣賡聯’라고 내용이 확인된다. 그리고 승정원일기의 같은 날 기사를 살펴보면 이 내용에 더해 ‘上命仁孫讀之. 上曰, 趙明鼎所製太康無逸之語, 正是予意, 特賜虎皮一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원인손(元仁孫, 1721-1774)과 조명정(趙明鼎, 1709~1779), 그리고 ‘太康無逸’이라는 시어 등은 곧 본 갱진첩 속 신하의 명단 및 내용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표제에 부기된 ‘癸酉(1753))八月’이라는 기록은 오류로 보인다.
갱진첩의 첫 면에는 영조가 지은 영화당명(暎花堂銘) 한 구가 기록되어 있는데, ‘영화당이 계유년에 지어졌으니, 그리워하는 마음 더욱 절실하네[堂建癸酉, 追慕深切]’라고 하였다. 당시 영화당에는 선조, 인조, 효종, 현종, 숙종의 어필 현판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선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영화당이 중건된 시기는 1692년(숙종 18) 5월이며, 계유년은 1693년으로 차이가 있다.
이어 갱진에 참여한 신하들이 ‘절(切)’자에 운자를 맞추어 화운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은 의정부 영의정(議政府領議政) 김상로(金尙魯, 1702~1766), 영돈녕 부사(領敦寧府事) 김한구(金漢耈, 1723~1769), 영성위(永城慰) 신광수(申光綏, 1731~1775),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 남기로(南綺老, 1723~?) 등으로, 총 22명이다. 특히 김한구는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김씨의 부친이며, 신광수는 영조의 서7녀인 화협옹주의 남편이다.
승정원일기에서도 기록되어 있듯이, 영조는 신하들에게 화운시를 지어 올리라고 명한 후 원인손으로 하여금 모두 읽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이들 가운데 조명정의 작품에 대해 “그가 지은 바의 ‘태강무일(太康無逸)’이라는 시어가 곧 나의 뜻과 같다.”고 하며 호랑이 가죽 1녕(令)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임금이 지은 시에 신하들이 운자를 맞추어 화답하는 갱진(賡進)은, 중국 고대 경서인 서경(書經)에서 유래되었을 정도로 군신간의 장구한 문화 중 하나였다. 임금이 특정 장소에 거둥하여 그 감회를 읊거나, 특별한 경사가 있을 경우, 건축물을 영건 및 중건하였을 때를 기념하여 주로 이루어졌다. 이는 각종 사료 및 갱진에 참여한 문신들의 문집 등을 통해 그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본 유물은 본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일본으로, 영조의 어제와 당대 최고 문신들의 화답시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 또한 본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영조어제화진첩(고궁1837), (영조)어제갱재첩(고궁1356) 등과 연관하여 참고할 수 있다.
※ 목차
- 御製
- 賡進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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