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어제광명전갱진첩
御製光明殿賡進帖
※ 해제
어제광명갱진첩(御製光明殿賡進帖)은 영조가 1772년(영조 48)에 광명전에 들어갔을 때 당시 왕세손(정조)과 신하들에게 어제시를 내리고 이에 대해 화답하여 지어 올린 시를 모은 첩이다.
당시의 상황은 영조실록 1772년 9월 29일 기사에 “임금이 숭현문 밖에 나아가 향지영례(香祗迎禮)를 행하고, 인하여 광명전으로 나아갔는데 왕세손이 따라 들어왔다. 임금이 「척호장(陟岵章)」을 읽고 친히 칠언시 한 구절을 지어 시신에게 화답하여 올리라 명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첫 면에는 어제시가 실려 있는데, “광명전에 있으니 온갖 일이 생각나는구나. 임오년을 떠올리니 또한 효라고 할 만하네[光明殿裏懷千萬, 追憶壬年亦曰孝]” 라고 되어 있다. 임오년은 1702년(숙종 28)으로, 대왕 대비전(大王大妃殿)이 광명전에서 가례(嘉禮)를 행했다.
다음으로 왕세손인 정조의 갱진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오늘날 성상을 그리워하는 마음 충만하니,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한결같은 효심이라네(今日維何聖慕萬, 八旬如一一心孝)”라고 하며 영조가 여든이 다 된 나이에도 한결같이 성상을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기리고 있다.
뒤이어 도총관(都總管) 하남군(河南君) 이광(李垙), 병조판서 구선행(具善行),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유영진(柳榮鎭) 등 22명 신하들의 갱진시가 차례대로 수록되어 있다. 이 시들은 ‘만(萬)’과 ‘효(孝)’에 운자를 맞추어 화운하였다.
갱진(賡進)은 중국 고대 경서인 서경(書經)에서 유래되었을 정도로 군신간의 장구한 문화 중 하나였다. 임금이 특정 장소에 거둥하여 그 감회를 읊거나, 특별한 경사가 있을 경우, 건축물을 영건 및 중건하였을 때를 기념하여 주로 이루어졌다. 이는 각종 사료 및 갱진에 참여한 문신들의 문집 등을 통해 그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본 유물은 본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일본으로, 영조의 어제와 당대 최고 문신들의 화답시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 또한 본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영조어제화진첩(고궁1837), (영조)어제갱재첩(고궁1356), (영조)어제갱진첩(고궁1059) 등과 연관하여 참고할 수 있다.
※ 목차
- 御製
- 賡進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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