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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 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조선왕조기록문화유산

정충장공실기

鄭忠壯公實記

※ 해제

 

『정충장공실기(忠壯公實記)』는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무신인 정운(鄭運, 15431592)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그의 8대손인 정희()1866(고종 3) 편찬했으며 9대손 정재천(鄭在天)이 교정(校正)하였다. 22책 가운데 본 유물은 제1[]에 해당한다.

 

정운은 1570(선조 3) 무과에 급제한 뒤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금갑도수군권관(金甲島水軍權管웅천 현감(熊川縣監)을 거쳐 제주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1592(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옥포·웅천·합포해전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하였으며, 64일 당항포해전에서는 적의 대장선에 뛰어들어 적장의 목을 베고 불을 지르는 큰 전과를 올렸다. 그는 78일 한산도대첩에서 큰 전과를 올리고 91일 부산포 해전에서 우부장(右部將)으로 선봉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책머리에는 정조가 1795125[乙卯十二月五日]에 기록한 어제 어필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한 면에 6자씩 총 24면에 걸쳐 정운의 충렬을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조는 “『충무전서(忠武全書)』를 읽을 때마다 녹도 만호(鹿島萬戶) 정운의 일을 보고서 일찍이 크게 감탄스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하였다. (『정조실록』1796, 719일 기사) 그는 정운의 후손인 정계주(鄭繼周)를 사복 내승(司僕內乘)에 주의하고 궁시(弓矢)를 내려 내시(內寺)에서 무예를 익힐 수 있도록 하였으며(『정조실록』179623일 기사), 또 다른 후손인 정혁(鄭爀)에게 별장(別將)의 자리를 만들어서 그를 특별히 의망하되, 경력은 방어사(防禦使)와 똑같이 쳐주도록 하라고 분부하라는 명을 내리는 등 (『정조실록』17981219일 기사) 충신의 후손을 적극적으로 등용하고자 하였다.

 

이어지는 서문(序文)은 본 책을 간행하게 된 계기 등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당성(唐城) 홍직필(洪直弼)1846(헌종 12) 5월 하지에 쓴 것이다. 이어서 목록과 정운의 세계(世系)가 이어지는데 1세 휘() 도정(道正)부터 26세인 팔현(八鉉)의 두 아들의 이름까지 수록되어 있다.

 

다음으로 권 1, 2의 본문이 시작된다. 1은 연보와 아암(莪庵) 박회원(朴會源)이 편찬한 본전(本傳), 백애경(白愛璥)이 지은 행장, 예조판서 민종현(閔鍾顯)이 찬한 시장(諡狀), 병조판서 원경하(元景夏)가 찬한 묘지명, 이조판서 민종현이 찬한 몰운대순의비문(沒雲臺殉義碑文), 대사헌 송내희가 찬한 신도비문, 안방준(安邦俊)이 기록한 안우산부산기사(安牛山邦俊釜山記事)가 이어진다.

 

본 책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소장기호 : 4645), 육군박물관(소장기호 : 고대군사재 083378-000) 등에 22책이 모두 전한다. 무신 정운의 생애와 공적, 그리고 그의 가계와 후손들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며, 그의 지조를 기리고 충신의 후손들을 예우하고자 했던 정조의 덕정 등을 볼 수 있는 자료로 그 가치가 있다.

 

※ 목차

 

- 正廟御筆

-

- 目錄

- 世系

- 忠壯公實記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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