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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1_유서.jpg

고문서

유서

諭書

  • 유물번호

    고문서1
  • 연대

  • 재질

    종이
  • 크기(cm)

    세로: 58.0, 가로: 121.5

첨부파일 :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유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1776년(영조 52) 영조의 나이 83세에 왕세손이던 정조에게 은인과 함께 내린 유서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한 《승정원일기》의 기사 삭제를 요청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정조의 효심에 영조가 감동하여 만들게 되었다. 정조는 조회나 거둥 때면 늘 은인과 <유세손서>를 앞세웠다고 한다. <유세손서>에는 정조의 효성을 만세토록 전하길 바라는 마음과 후계자에 대한 믿음을 적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은 이렇게 말한다. 아! 해동(海東)의 삼백년 (우리) 조선은 팔십삼 세의 임금이 그 이십오 세의 손자에게 의지한다. 오늘날 종통(宗統)을 바르게 하니 나라는 태산반석(泰山盤石)처럼 편안함이 있고 또 진달한 글을 보니 말은 엄명하고 뜻은 정대하여 천세, 백세를 전할 수 있다. 일기(日記)의 세초(洗草)는 실로 너의 뜻을 따른 것이다. 또 듣건대, 어제 무덤 위에서의 행동에 대해 들은 사람은 눈물로 옷깃을 적실 만하였다. 국초에 보인(寶印)을 만든 고사(故事)를 따라서 ‘지효[(至孝), 지극한 효성]’라 새겨 너에게 주려 하였는데 네 스승 영상(領相)의 충성스런 말이 나로 하여금 감동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 명을 중지하기는 하였으나 그 행적을 어찌 후세에 민멸(泯滅)되게 할 수 있겠는가. 특별히 하나의 ‘효(孝)’ 자로 그 마음을 금세(今世)에 드러내고 그 일을 후세에 본보기로 삼는다면 비록 해동의 초목과 곤충일지라도 누가 모르겠는가. 특별히 정전(正殿)에 임어하여 선유(宣諭)하고 이어서 그 하례를 받는다. 할아버지와 그 손자가 서로 의지하니 오늘날에 광명정대(光明正大)하다. 아, 내 손자야! 할아버지의 뜻을 체득하여 밤낮으로 두려워하고 삼가서 우리 삼백 년 종묘사직을 보존할지어다. 내 즉위 오십이 년, 나이 팔십삼 세에 이십오 세 되는 내 세손에게 이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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