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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정조어필행서서간
正祖御筆行書書簡
-
유물번호
고궁5 -
연대
-
재질
종이에 먹 -
크기(cm)
세로: 41.5, 가로: 62.0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정조어필행서서간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제작년도: 1798년
정조가 당시 승지로 있으면서 함흥에 갔다 돌아온 이익운에게 보낸 편지로 추정된다. 이익운(李益運, 1748~1817)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수(季受), 호는 학록(鶴鹿)으로, 채제공(蔡濟恭)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 길에서 상경하느라 무척 피곤할 터인데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가? 오늘 함경도 관찰사를 파직한 사안은 활인서 제조 파직에 따른 사사로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친분이나 인정으로 미루어 볼 때 좌의정 채제공은 한쪽 편을 드는 면밀함은 없을 듯한데, 아침 강론[朝筵]에서의 행동거지를 보면 이미 나에게 답변한[回啓] 동료 재상을 마치 질책하듯 면박하고, 동료 재상 또한 스스로 인정하는 뜻으로 관찰사를 걸고 들어갔으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얼마 전에 석(晳)의 말을 들어보니 “조가[(曺家), 조윤정(曺允精)]가 좌의정에게 간절히 부탁한 적이 있다.”라고 말한 바 있지만 어찌 선입견을 위주로 그리 하였겠는가? 그 옳고 그름을 따지자면 조가(曺家)가 지고 신가[(申家), 신대윤(申大尹)]가 이겨야 할 터인데, 갑자기 신(申)이 유배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비록 위화도의 간청을 들어준 사안을 말하더라도 선혜당에서 여러 사람을 통해 전달한 말에 따라 허락하였고, 선혜당에서 거조[(擧條), 임금에게 아뢰는 조항]까지 제시하기에 소채[(小蔡), 채홍리(蔡弘履)]에게 물어보았더니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다. 소채는 이러한 일에 감히 관여하지 못하여 그러한 것인가? 언제쯤 승정원(承政院)에 들어오려는가? 윤음[(綸音), 훈유문서] 한 통을 등사해 보낸다. 조지[(朝紙), 기별(奇別)]는 아마도 잘못 쓴 곳이 많을 터이니, 이것을 여러 남인들과 돌려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의리가 분명함에 관해서는 앞서의 전례(典禮)와 동일하다. 알겠는가? 이만 줄인다. 정동에 즉시 전한다."
정조가 당시 승지로 있으면서 함흥에 갔다 돌아온 이익운에게 보낸 편지로 추정된다. 이익운(李益運, 1748~1817)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수(季受), 호는 학록(鶴鹿)으로, 채제공(蔡濟恭)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 길에서 상경하느라 무척 피곤할 터인데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가? 오늘 함경도 관찰사를 파직한 사안은 활인서 제조 파직에 따른 사사로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친분이나 인정으로 미루어 볼 때 좌의정 채제공은 한쪽 편을 드는 면밀함은 없을 듯한데, 아침 강론[朝筵]에서의 행동거지를 보면 이미 나에게 답변한[回啓] 동료 재상을 마치 질책하듯 면박하고, 동료 재상 또한 스스로 인정하는 뜻으로 관찰사를 걸고 들어갔으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얼마 전에 석(晳)의 말을 들어보니 “조가[(曺家), 조윤정(曺允精)]가 좌의정에게 간절히 부탁한 적이 있다.”라고 말한 바 있지만 어찌 선입견을 위주로 그리 하였겠는가? 그 옳고 그름을 따지자면 조가(曺家)가 지고 신가[(申家), 신대윤(申大尹)]가 이겨야 할 터인데, 갑자기 신(申)이 유배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비록 위화도의 간청을 들어준 사안을 말하더라도 선혜당에서 여러 사람을 통해 전달한 말에 따라 허락하였고, 선혜당에서 거조[(擧條), 임금에게 아뢰는 조항]까지 제시하기에 소채[(小蔡), 채홍리(蔡弘履)]에게 물어보았더니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다. 소채는 이러한 일에 감히 관여하지 못하여 그러한 것인가? 언제쯤 승정원(承政院)에 들어오려는가? 윤음[(綸音), 훈유문서] 한 통을 등사해 보낸다. 조지[(朝紙), 기별(奇別)]는 아마도 잘못 쓴 곳이 많을 터이니, 이것을 여러 남인들과 돌려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의리가 분명함에 관해서는 앞서의 전례(典禮)와 동일하다. 알겠는가? 이만 줄인다. 정동에 즉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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