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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정조어찰첩
正祖御札帖
-
유물번호
고궁923_7 -
연대
-
재질
종이 -
크기(cm)
세로: 30.7, 가로: 41.9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정조어찰첩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정조가 쓴 어찰(御札)을 모아놓은 첩이다. 고궁922과 함께 각각 하권과 상권을 이룬다. 하권은 42면으로 되어 있으며 장황되어 있다. 표지는 능화판(菱花板)을 이용하여 만자문(卍字紋)을 찍은 하늘색 종이로 되어 있으며, 흰 비단의 제첨(題簽)이 붙어 있으나 제목은 쓰여 있지 않다. 편지지는 우측에 피봉(皮封)도 함께 배접(褙接)하였으며, 여백 부분은 금박이 뿌려진 색지를 사용하였다. 하권에는21편의 편지와 3편의 물목(物目)이 실려 있다. 편지의 수신자는 정조의 후궁 유빈(綏嬪)박씨의 아버지인 박준원(朴準源)과 그 아들 박종보(朴宗輔), 박종경(朴宗慶) 등이다. 피봉에는 여신(汝臣), 주원(廚院), 낙동(駱洞), 보은(報恩), 은아(恩衙) 등의 수신처가 적혀 있다. '여신'은 박종보의 자(字)이며 사옹원(司饔院)을 가리키는 말인 '주원' 역시 사옹원 주부를 지냈던 박종보를 가리킨다. '낙동'은 유빈 박씨와의 가례(嘉禮) 이후 정조가 장인인 박준원에게 내려준 집으로, 박종보는 이 집에서 부친 박준원을 모시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보은', '은아'는 박준원이 1788년부터 1790년까지 현감으로 재직한 보은(報恩) 관아(官衙)를 지칭한다.이 편지는 어찰첩 하권 7-8면으로 정조가 보은의 박준원에게 보낸 것이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보은(報恩) 관아의 영사(鈴史)에 입납(入納) 근봉(謹封)즉일에 여신(汝臣)으로부터 보내주신 답장을 받아 안후를 알고 나니 위로되고 기쁨을 말로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편지 받은 뒤 며칠이 되었는데, 정무 보는 안후(安候)가 신의 도움으로 만번 편안한지 도리어 향모하는 마음 궁금합니다. 이곳은 그대로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제도(諸道)의 연사年事는 다행히 흉년을 면하였고 호남과 영남도 거의 마음을 놓을 수 있습니다. 다만, 관[(關), 마천령)] 이북[함경도] 백성의 일로 시름겨워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 날이 없으니, 이 얼마나 사람을 고민되게 합니까. 본읍[(本邑), 보은]의 삼정[(三政), 나라의 중요한 정사 중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인 전부(田賦) · 군정(軍政) · 환곡(還穀)을 말한다.]은 과연 모두 정돈되어 다른 난처한 단서나 없습니까.가체(加髢)의 금지는 평소 축적된 고심에서 나왔는데, 지금 다행히 시행하게 되니 매우 기쁘고 흡족한 일임을 깨닫겠습니다.10월 24일 번거로워 결례하고 올립니다.
보은(報恩) 관아의 영사(鈴史)에 입납(入納) 근봉(謹封)즉일에 여신(汝臣)으로부터 보내주신 답장을 받아 안후를 알고 나니 위로되고 기쁨을 말로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편지 받은 뒤 며칠이 되었는데, 정무 보는 안후(安候)가 신의 도움으로 만번 편안한지 도리어 향모하는 마음 궁금합니다. 이곳은 그대로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제도(諸道)의 연사年事는 다행히 흉년을 면하였고 호남과 영남도 거의 마음을 놓을 수 있습니다. 다만, 관[(關), 마천령)] 이북[함경도] 백성의 일로 시름겨워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 날이 없으니, 이 얼마나 사람을 고민되게 합니까. 본읍[(本邑), 보은]의 삼정[(三政), 나라의 중요한 정사 중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인 전부(田賦) · 군정(軍政) · 환곡(還穀)을 말한다.]은 과연 모두 정돈되어 다른 난처한 단서나 없습니까.가체(加髢)의 금지는 평소 축적된 고심에서 나왔는데, 지금 다행히 시행하게 되니 매우 기쁘고 흡족한 일임을 깨닫겠습니다.10월 24일 번거로워 결례하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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