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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923_19_정조어찰첩.jpg

전적

정조어찰첩

正祖御札帖

  • 유물번호

    고궁923_19
  • 연대

  • 재질

    종이
  • 크기(cm)

    세로: 27.2, 가로: 35.2

첨부파일 :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정조어찰첩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정조가 쓴 어찰(御札)을 모아놓은 첩이다. 고궁922과 함께 각각 하권과 상권을 이룬다. 하권은 42면으로 되어 있으며 장황되어 있다. 표지는 능화판(菱花板)을 이용하여 만자문(卍字紋)을 찍은 하늘색 종이로 되어 있으며, 흰 비단의 제첨(題簽)이 붙어 있으나 제목은 쓰여 있지 않다. 편지지는 우측에 피봉(皮封)도 함께 배접(褙接)하였으며, 여백 부분은 금박이 뿌려진 색지를 사용하였다. 하권에는21편의 편지와 3편의 물목(物目)이 실려 있다. 편지의 수신자는 정조의 후궁 유빈(綏嬪)박씨의 아버지인 박준원(朴準源)과 그 아들 박종보(朴宗輔), 박종경(朴宗慶) 등이다. 피봉에는 여신(汝臣), 주원(廚院), 낙동(駱洞), 보은(報恩), 은아(恩衙) 등의 수신처가 적혀 있다. '여신'은 박종보의 자(字)이며 사옹원(司饔院)을 가리키는 말인 '주원' 역시 사옹원 주부를 지냈던 박종보를 가리킨다. '낙동'은 유빈 박씨와의 가례(嘉禮) 이후 정조가 장인인 박준원에게 내려준 집으로, 박종보는 이 집에서 부친 박준원을 모시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보은', '은아'는 박준원이 1788년부터 1790년까지 현감으로 재직한 보은(報恩) 관아(官衙)를 지칭한다.이 편지는 어찰첩 하권 19-20면으로 정조가 박종보에게 보낸 것이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낙곡(駱谷)의 책상 오른쪽에어제 만난 것은 사뭇 위로되네. 밤 사이에 안후(安候)가 편안한가. 여호(汝護)가 중로에서 병으로 수레에 실려 돌아왔다고 하는 말을 들은 듯한데, 전해 들은 말이 참으로 그런 것인가. 모름지기 보여주기 바라네. 내일 저녁밥 먹은 뒤에 편리할 대로 들어오는 것이 어떻겠는가. 격식을 갖추지 않고 이만 줄이네. 즉일에 결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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