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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영조대왕이 밝힌 어제어필 간행의미
英祖大王 御筆 刊行序言
-
유물번호
창덕6718_앞면 -
연대
-
재질
미정질 대리암(회색) -
크기(cm)
세로: 33.6~33.8, 가로: 24.2~24.9, 두께: 7.1~7.4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영조대왕이 밝힌 어제어필 간행의미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제작년대: 영조 22년(1746)~52년(1776)
“역대 왕들의 어필(御筆)을 새겨서 간행하는데 너무 번잡하다. 소나무에 길게 새겨 경비를 절감한다. 후대에는 그 소나무에 이어서 계속 새겨 간행하면 좋다”라는 내용이다. 창덕6718, 창덕6708_앞면이 각석의 전문을 이루며, 구체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지금 편집하여 인쇄하는 것은 평소에 써 둔 것이다. 크고 작은 글자체는 음각(陰刻)하여 한 첩(帖)으로 만들고 양각한 것은 한 권(卷)으로 만들어 어제초집궤(御製抄集樻)에 함께 두었다. 글 속에 그 뜻은 무엇을 말함인가? 나는 본래 글 문필(文筆)에 솜씨가 없으니 시 한 수, 글자 한 자를 어떻게 후세에 남기겠는가? 그렇지만 나라에는 근래 관례가 있어 역대 왕들의 글과 글씨를 혹 편집 인쇄하여 권이나 첩으로 만든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편집 인쇄함은 이치상 당연하다. 현재 번잡하게 어제(御製)와 어필(御筆)을 올리니 감독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들을 취사선택할 수 있겠는가? 선택할 때 어떤 방법으로 정밀히 가려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까닭으로 나는 왕위에 오른 지 20여 년 즉 병인년(영조 22년, 1746) 여름에 관각(館閣)에 있는 신하로 하여금 어제(御製)를 편집하도록 시켰다. 또 궁궐 안에는 평일 돌에 새긴 것과 나무에 새긴 것이 있다. 지금 새로 쓴 것은 한 본은 음각하여 한 첩(貼)으로 만들었고, 한 본은 양각하여 이미 장(障)[병풍]으로 만들었다. 남아 있는 것을 다시 찍어서 한 권(卷)으로 만들었으니 이것은 애초 경비를 절감하느라 소나무에 새겼는데 한 줄에 전체를 새겼다. 그러므로 지금 글자마다 찍어 장(張)을 만들어 권(卷)으로 만든다. 다가오는 세대에 다시 찍어 역대 왕들의 어필(御筆) 아래에 첨가 보충하면 된다. 이처럼 된 후라면 비록 백 가지 글과 만 글자의 글씨가 있더라도 누가 감히 잡스럽게 찍을 것인가? 나의 뜻을 첩(貼) 끝에 붙여 둔다. 지금 내가 문장과 글씨에 이처럼 열심인 것은 어찌 나만을 위함인가? 의도는 선대(先代)를 거듭 계승코자 함이다. 문필(文筆)도 이처럼 열심히 하는데, 더구나 정치야 말할 필요가 있는가?
“역대 왕들의 어필(御筆)을 새겨서 간행하는데 너무 번잡하다. 소나무에 길게 새겨 경비를 절감한다. 후대에는 그 소나무에 이어서 계속 새겨 간행하면 좋다”라는 내용이다. 창덕6718, 창덕6708_앞면이 각석의 전문을 이루며, 구체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지금 편집하여 인쇄하는 것은 평소에 써 둔 것이다. 크고 작은 글자체는 음각(陰刻)하여 한 첩(帖)으로 만들고 양각한 것은 한 권(卷)으로 만들어 어제초집궤(御製抄集樻)에 함께 두었다. 글 속에 그 뜻은 무엇을 말함인가? 나는 본래 글 문필(文筆)에 솜씨가 없으니 시 한 수, 글자 한 자를 어떻게 후세에 남기겠는가? 그렇지만 나라에는 근래 관례가 있어 역대 왕들의 글과 글씨를 혹 편집 인쇄하여 권이나 첩으로 만든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편집 인쇄함은 이치상 당연하다. 현재 번잡하게 어제(御製)와 어필(御筆)을 올리니 감독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들을 취사선택할 수 있겠는가? 선택할 때 어떤 방법으로 정밀히 가려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까닭으로 나는 왕위에 오른 지 20여 년 즉 병인년(영조 22년, 1746) 여름에 관각(館閣)에 있는 신하로 하여금 어제(御製)를 편집하도록 시켰다. 또 궁궐 안에는 평일 돌에 새긴 것과 나무에 새긴 것이 있다. 지금 새로 쓴 것은 한 본은 음각하여 한 첩(貼)으로 만들었고, 한 본은 양각하여 이미 장(障)[병풍]으로 만들었다. 남아 있는 것을 다시 찍어서 한 권(卷)으로 만들었으니 이것은 애초 경비를 절감하느라 소나무에 새겼는데 한 줄에 전체를 새겼다. 그러므로 지금 글자마다 찍어 장(張)을 만들어 권(卷)으로 만든다. 다가오는 세대에 다시 찍어 역대 왕들의 어필(御筆) 아래에 첨가 보충하면 된다. 이처럼 된 후라면 비록 백 가지 글과 만 글자의 글씨가 있더라도 누가 감히 잡스럽게 찍을 것인가? 나의 뜻을 첩(貼) 끝에 붙여 둔다. 지금 내가 문장과 글씨에 이처럼 열심인 것은 어찌 나만을 위함인가? 의도는 선대(先代)를 거듭 계승코자 함이다. 문필(文筆)도 이처럼 열심히 하는데, 더구나 정치야 말할 필요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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