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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정조어찰첩
正祖御札帖
-
유물번호
고궁695_29 -
연대
-
재질
종이 -
크기(cm)
세로: 37.1, 가로: 59.8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정조어찰첩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제작년도: 정조 16년(1792)
정조어찰첩은 정조가 쓴 21편의 간찰(簡札), 1편의 물목(物目), 1편의 시문(詩文)을 모아놓은 간찰첩(簡札帖)이다. 선풍엽[(旋風葉), 반으로 접은 낱장들을 바깥 면끼리 풀로 붙여 아코디언 모양으로 연결하고 표지를 따로 붙인 첩장식] 형태의 첩으로 장황되어 있다. 표지는 장지(壯紙)를 수십 장 겹쳐 눌러서 나무처럼 두껍고 견고하게 만든 판에 원용문(圓龍紋) 비단을 씌워 만들었고, 여기에 "정묘어찰첩 전(正廟御札帖 全)" 이라고 쓴 제첨(題簽)을 붙여 놓았다. 내용은 총 54면으로 되어 있는데 앞 · 뒤로 4면씩은 공면(空面)이다. 편지지 우측에 피봉(皮封)도 함께 배접(褙接)되어 있다. 편지의 수신자는 정조의 후궁 유빈(綏嬪) 박씨의 백부인 박윤원(朴胤源)으로, 피봉에 적힌 창동(倉洞 · 蒼洞), 창곡(蒼谷), 이동(泥洞), 종현(鍾峴), 정동(貞洞) 등의 수신처는 박윤원의 거처이다.이 편지는 어찰첩 29-30면으로 정조가 임자년(1792) 12월 26일에 박윤원에게 보낸 것이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창동(倉洞)의 명을 받드는 자에게한해가 저물어 가는데, 정양(靜養)하는 체후(軆候)가 더욱 이치를 깨치는 신묘함이 있으시고 기거(起居)의 모든 일이 신의 도움으로 편안하십니까.벼슬하는 것은 친척의 처지인 내가 기쁠 뿐만 아니라, 부망(副望) · 말망(末望)의 주의(注擬)를 살펴보면, 전지[(銓地), 이조]의 관심을 알 만합니다. 척리(戚里)의 집안에서 이러한 성가(聲價)를 받고 있으니, 더우기 얼마만큼이나 미리 다행합니까. 그러나 옛 사람은 벼슬할 적에 녹이 그 가운데 있었는데, 존좌(尊座)는 도리어 굶주리는 본분(本分)을 구하니, 존좌의 빼앗기 어려운 집수(執守)하는 지조를 본디 알고 있지만, 공자께서 자장(子張)의 물음에 대답한 말씀을 살펴본다면 더욱 의혹스러운 탄식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한번 다시 한층 더 진취하여 경행(經行)의 상도(常道)에 들어감이 있다면 또 장차 거두어 동강(東崗)의 언덕으로 돌아갈 것입니까. 이러할 즈음에 한번 만나 볼 약속은 아마도 적합할 때가 없을 듯합니다.저번에 보낸 몇 가지 물품은 포름(庖廩)과는 다르니, 아마도 이미 살펴서 받아 두었을 것이나, 땔나무(柴駄)와 첩화(帖畵)를 또 이에 나누어 줄 뿐입니다. 번거로움이 심하여 이에 생략하고 이만 줄입니다. 오직 새해를 맞이하여 좋은 일이 많으시기 바랍니다.임자년 12월 26일 번거로워 예를 생략합니다.
정조어찰첩은 정조가 쓴 21편의 간찰(簡札), 1편의 물목(物目), 1편의 시문(詩文)을 모아놓은 간찰첩(簡札帖)이다. 선풍엽[(旋風葉), 반으로 접은 낱장들을 바깥 면끼리 풀로 붙여 아코디언 모양으로 연결하고 표지를 따로 붙인 첩장식] 형태의 첩으로 장황되어 있다. 표지는 장지(壯紙)를 수십 장 겹쳐 눌러서 나무처럼 두껍고 견고하게 만든 판에 원용문(圓龍紋) 비단을 씌워 만들었고, 여기에 "정묘어찰첩 전(正廟御札帖 全)" 이라고 쓴 제첨(題簽)을 붙여 놓았다. 내용은 총 54면으로 되어 있는데 앞 · 뒤로 4면씩은 공면(空面)이다. 편지지 우측에 피봉(皮封)도 함께 배접(褙接)되어 있다. 편지의 수신자는 정조의 후궁 유빈(綏嬪) 박씨의 백부인 박윤원(朴胤源)으로, 피봉에 적힌 창동(倉洞 · 蒼洞), 창곡(蒼谷), 이동(泥洞), 종현(鍾峴), 정동(貞洞) 등의 수신처는 박윤원의 거처이다.이 편지는 어찰첩 29-30면으로 정조가 임자년(1792) 12월 26일에 박윤원에게 보낸 것이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창동(倉洞)의 명을 받드는 자에게한해가 저물어 가는데, 정양(靜養)하는 체후(軆候)가 더욱 이치를 깨치는 신묘함이 있으시고 기거(起居)의 모든 일이 신의 도움으로 편안하십니까.벼슬하는 것은 친척의 처지인 내가 기쁠 뿐만 아니라, 부망(副望) · 말망(末望)의 주의(注擬)를 살펴보면, 전지[(銓地), 이조]의 관심을 알 만합니다. 척리(戚里)의 집안에서 이러한 성가(聲價)를 받고 있으니, 더우기 얼마만큼이나 미리 다행합니까. 그러나 옛 사람은 벼슬할 적에 녹이 그 가운데 있었는데, 존좌(尊座)는 도리어 굶주리는 본분(本分)을 구하니, 존좌의 빼앗기 어려운 집수(執守)하는 지조를 본디 알고 있지만, 공자께서 자장(子張)의 물음에 대답한 말씀을 살펴본다면 더욱 의혹스러운 탄식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한번 다시 한층 더 진취하여 경행(經行)의 상도(常道)에 들어감이 있다면 또 장차 거두어 동강(東崗)의 언덕으로 돌아갈 것입니까. 이러할 즈음에 한번 만나 볼 약속은 아마도 적합할 때가 없을 듯합니다.저번에 보낸 몇 가지 물품은 포름(庖廩)과는 다르니, 아마도 이미 살펴서 받아 두었을 것이나, 땔나무(柴駄)와 첩화(帖畵)를 또 이에 나누어 줄 뿐입니다. 번거로움이 심하여 이에 생략하고 이만 줄입니다. 오직 새해를 맞이하여 좋은 일이 많으시기 바랍니다.임자년 12월 26일 번거로워 예를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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