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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유제 오개삽입인
鍮製 五個?入印
-
유물번호
창덕18773-5 -
연대
1800년대 -
재질
금속 -
크기(cm)
가로: 1.5cm, 세로: 1.5cm, 높이: 1.6cm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유제 오개삽입인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서체: 소전(小篆)
사용자: 이하응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은 자는 시백(時伯), 호는 석파(石坡), 시호는 헌의(獻懿), 영조의 5대손이며, 조선 제26대 왕 고종의 아버지이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아들을 대신하여 고종 전반기에 섭정을 했다. 왕권을 강화하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정책을 폈으나, 통상거부정책 때문에 근대화가 지연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정희와는 내외종간의 먼 친척으로 젊은 시절 그의 문하에서 글씨와 난 치는 법을 전수받아Teki. 특히 묵란을 잘 그려 추사로부터 “깊은 경지에 들어갔다”고 극찬을 받았다. 사의(寫意)를 중시하는 남종문인화를 추구했으며, 글씨는 추사체를 계승하는 등 김정희의 예술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하응의 인장을 모아 만든 《노안당인보(老安堂印譜)》는 현재 전하지 않으나, 오세창에 편찬한 《근역인수(槿域印籔》에 일부인 25방이 실려있다. 정학교를 비롯해 당시 유명했던 전각가인 유한익 등이 그의 인장을 새겼다.투인(套印)은 휴대하여 사용하기 쉽도록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인장이 포개지도록 만든 인장으로, 놋으로 만든 이 투인은 이하응의 것이다. 크기가 제일 작은 안쪽의 인장은 여섯 면을 모두 새기고, 나머지 4개의 인장은 윗면이 뚫린 형태로 각각 다섯 면으로 이루어져 총 26면이다.
1면의 오유지족(吾唯知足)은 '나는 오직 만족할 뿐이다'라는 뜻이다. 2면의 아사고인(我思古人)은 '나는 옛 사람을 생각한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어려운 일에 부딪쳤을 때 옛 사람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3면의 배배(拜拜)는 '절을 하고 절을 하다'라는 뜻으로, 흔히 편지의 끝에 보내는 사람의 이름을 쓰고 드린다는 뜻으로 쓴다. 4면의 행림(杏林)은 '살구나무 숲'이라는 뜻이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동봉이란 의원이 여산에서 숨어살면서 의술로 병을 치료하면서도 대가는 받지 않고 그의 동산에 살구나무를 심게 했는데, 여러 해가 되니 무성한 숲이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5면의 여의 (如意)는 '뜻과 같이 되기를'이라는 뜻이다. 6면의 호봉(護封)은 책의 표지나 편지 봉투 등에 찍는 인장이다.
사용자: 이하응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은 자는 시백(時伯), 호는 석파(石坡), 시호는 헌의(獻懿), 영조의 5대손이며, 조선 제26대 왕 고종의 아버지이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아들을 대신하여 고종 전반기에 섭정을 했다. 왕권을 강화하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정책을 폈으나, 통상거부정책 때문에 근대화가 지연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정희와는 내외종간의 먼 친척으로 젊은 시절 그의 문하에서 글씨와 난 치는 법을 전수받아Teki. 특히 묵란을 잘 그려 추사로부터 “깊은 경지에 들어갔다”고 극찬을 받았다. 사의(寫意)를 중시하는 남종문인화를 추구했으며, 글씨는 추사체를 계승하는 등 김정희의 예술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하응의 인장을 모아 만든 《노안당인보(老安堂印譜)》는 현재 전하지 않으나, 오세창에 편찬한 《근역인수(槿域印籔》에 일부인 25방이 실려있다. 정학교를 비롯해 당시 유명했던 전각가인 유한익 등이 그의 인장을 새겼다.투인(套印)은 휴대하여 사용하기 쉽도록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인장이 포개지도록 만든 인장으로, 놋으로 만든 이 투인은 이하응의 것이다. 크기가 제일 작은 안쪽의 인장은 여섯 면을 모두 새기고, 나머지 4개의 인장은 윗면이 뚫린 형태로 각각 다섯 면으로 이루어져 총 26면이다.
1면의 오유지족(吾唯知足)은 '나는 오직 만족할 뿐이다'라는 뜻이다. 2면의 아사고인(我思古人)은 '나는 옛 사람을 생각한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어려운 일에 부딪쳤을 때 옛 사람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3면의 배배(拜拜)는 '절을 하고 절을 하다'라는 뜻으로, 흔히 편지의 끝에 보내는 사람의 이름을 쓰고 드린다는 뜻으로 쓴다. 4면의 행림(杏林)은 '살구나무 숲'이라는 뜻이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동봉이란 의원이 여산에서 숨어살면서 의술로 병을 치료하면서도 대가는 받지 않고 그의 동산에 살구나무를 심게 했는데, 여러 해가 되니 무성한 숲이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5면의 여의 (如意)는 '뜻과 같이 되기를'이라는 뜻이다. 6면의 호봉(護封)은 책의 표지나 편지 봉투 등에 찍는 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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