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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석제 '극' 인장
石製 極 印章
-
유물번호
창덕7871 -
연대
-
재질
석인 -
크기(cm)
가로: 2.9, 세로: 2.8, 높이: 4.8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석제 '극' 인장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서체: 소전(小篆)
사용자: 정조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정조(正祖, 재위 1776~1800)는 조선 제22대 왕으로 이름은 산(祘),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이다. 영조의 둘째 아들인 장헌세자(莊獻世子)와 헤경궁(惠慶宮) 홍씨(洪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2년 장헌세자가 죽자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의 후사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정조는 와위에 오르자마자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해 본격적인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인재 양성에 힘썼다. 정조는 열성적으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등 중국 서적을 수입했고, 임진자(壬辰字) 등 여러 활자체를 개발해 서적을 활발히 간행했다. 또한 영조 때 시작된 문물․제도의 정비 작업을 계승하는 한편, 스스로의 학문 연마에도 힘썼다. 정조가 세손 시절 동궁에서 쓰던 각종 인장을 모은 《동장(銅章)》[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에는 보새(寶璽)를 비록해 관물헌(觀物軒), 시재(蓍齋), 계고지인(稽古之印) 등의 개인 인장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극(極)"은 하늘의 중심 별자리인 북극성에서 따온 것으로 임금을 상징한다. ‘극(極)’의 주변에는 두 마리의 용이 둘러져 왕의 인장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임금의 개인 인장을 모아 놓은 《수옥헌인존》에 실려 있으며, 정조가 즉위 직후 구입한 중국의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첫 장에도 ‘극(極)’을 비롯해 ‘홍재(弘齋), ‘만기지가(萬機之暇)’ 등이 찍혀 있다.
사용자: 정조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정조(正祖, 재위 1776~1800)는 조선 제22대 왕으로 이름은 산(祘),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이다. 영조의 둘째 아들인 장헌세자(莊獻世子)와 헤경궁(惠慶宮) 홍씨(洪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2년 장헌세자가 죽자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의 후사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정조는 와위에 오르자마자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해 본격적인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인재 양성에 힘썼다. 정조는 열성적으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등 중국 서적을 수입했고, 임진자(壬辰字) 등 여러 활자체를 개발해 서적을 활발히 간행했다. 또한 영조 때 시작된 문물․제도의 정비 작업을 계승하는 한편, 스스로의 학문 연마에도 힘썼다. 정조가 세손 시절 동궁에서 쓰던 각종 인장을 모은 《동장(銅章)》[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에는 보새(寶璽)를 비록해 관물헌(觀物軒), 시재(蓍齋), 계고지인(稽古之印) 등의 개인 인장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극(極)"은 하늘의 중심 별자리인 북극성에서 따온 것으로 임금을 상징한다. ‘극(極)’의 주변에는 두 마리의 용이 둘러져 왕의 인장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임금의 개인 인장을 모아 놓은 《수옥헌인존》에 실려 있으며, 정조가 즉위 직후 구입한 중국의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첫 장에도 ‘극(極)’을 비롯해 ‘홍재(弘齋), ‘만기지가(萬機之暇)’ 등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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