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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목제 '홍명원인' 인장

木製 洪命元印 印章

  • 유물번호

    창덕18880
  • 연대

  • 재질

    목인
  • 크기(cm)

    가로: 4.4, 세로: 4.4, 높이: 5.4

첨부파일 :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목제 '홍명원인' 인장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서체: 한인전(漢印篆)
사용자: 홍명원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홍명원(洪命元, 1573~1623)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낙부(樂夫), 호는 해봉(海峯)이다. 25세에 증광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承文院)에 들어간 후,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광해군 초기에 후금(後金)과 수교한 것을 구실로, 명(明)으로부터 추궁 당하자 사신으로 가서 이를 잘 수습했다. 명(明)의 인사들로부터 ‘장덕군자(長德君子)’라고 불렸을 정도로 문장과 덕을 함께 갖추었으며, 문장은 한(漢), 시는 성당(盛唐)의 것에 능했다. 저서로 《해봉집》이 있으며, 그 중 권 1에 실린 오언절구의 〈제고씨화보(題顧氏畵譜)〉 107수는 남북조 시대의 고개지(顧愷之)로부터 명(明)의 구영(仇英)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대 서화가들에 대해 읊은 것으로, 이를 통해 그가 중국 서화 예술에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있다.

한 면에는 이름을, 다른 한 면에는 본관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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