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통합예약
소장품 소장품 안내

소장품 안내

고궁-00199-0001_5.jpg
고궁-01884-0001_1.jpg
고궁-01884-0001_2.jpg
고궁-01884-0001_3.jpg
고궁-01884-0001_4.jpg

현판

어필현판

御筆懸板

  • 유물번호

    고궁1884
  • 연대

    1865년
  • 재질

    나무
  • 크기(cm)

    세로: 44cm, 가로: 129.4cm, 높이: 3.4cm

첨부파일 :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어필현판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最樂齋’(최락재)의 현판으로 最樂’(최락)의 의미는 한나라 동평왕(東平王) ()선을 행하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다(爲善最樂)”라고 한 것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조선궁궐과 관련된 最樂齋라는 현판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조부인 김생해(金生海, 1512~1558)가 일찍이 백악산(白岳山) 아래 장동(壯洞)의 서울집에 거처하였는데 자신의 작은 서재의 벽에는 한석봉(韓石峯, 1543~1605)이 쓴 岳麓幽居’(악록유거)라는 글씨를 걸고 최락재라는 현액을 걸어두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 중기의 안동 출신의 문신인 김용(金涌, 1557~1620)󰡔雲川集󰡕(운천집) 2에 망월헌(望月軒) 금개(琴愷, 1562~?), 긍구당(肯構堂) 이현보(李賢輔, 1467~1555)와 더불어 최락재와 관련된 글이 있으나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시의 인물들이 당시 안동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김생해의 서재 현판이 최락재임을 감안하면 안동 김씨 가문의 서재현판으로 추정된다.

관련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