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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

십팔학사도서지부 현판

十八學士圖書之府 懸板

  • 유물번호

    창덕20964
  • 연대

    19세기 후반
  • 재질

    나무 / 피나무
  • 크기(cm)

    가로: 275.5cm, 세로: 37cm

첨부파일 :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십팔학사도서지부 현판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홍문관(弘文館)에 걸었던 현판으로 ‘십팔학사(十八學士)들의 서책이 있는 관서’라는 뜻이다. 홍문관은 궁중의 경서와 서적[經籍]을 관리하고 문한(文翰)을 다스리며 왕의 자문에 대비하던 관청으로 옥당(玉堂)이라고도 하였다. 경복궁 홍문관은 영추문迎秋門 안쪽이자 수정전 남서쪽 궐내 각사 권역에 있었다. 십팔학사는 원래 당나라 이세민(훗날 태종)이 황위에 오르기 전 문학관(文學館)을 세우고 자신을 보좌할 18명의 학자들을 불러 모았던 것에서 유래하는데, 당 현종이 집현전에 모은 개원십팔학사(開原十八學士)를 의미할 때도 있다. 당시 문학관은 영주에 있었는데 사람들은 18명의 학사를 흠모하며 ‘영주에 올랐다[登瀛洲]’고 칭송하였고 그들을 한림학사(翰林學士)라 일컬었다. 조선시대에는 이 고사를 인용해 홍문관을 영관(瀛館) 또는 한림원(翰林院)으로도 불렀으며, 영조는 “당나라에는 영주에 오른 십팔학사가 있었고 우리나라에는 집현전 학사가 있었으니, 바로 지금의 옥당(홍문관)이 그들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고종 대 십팔학사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을 비롯해, 당시 대왕대비였던 익종비 신정왕후, 고종비 명성황후의 친족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경복궁 영건도감에 속하여 대원군 주도로 이루어진 궁궐의 중건과 여러 정책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글씨이며 ‘대원군장(大院君章)’이라는 인장이 새겨져 있다. 테두리가 액자처럼 얇은 띠 형태이며 모서리가 활 모양인 궁양(弓樣) 현판으로 곡두문(曲頭文)을 그려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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