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통합예약

태조 어필각석
태조 어필각석
태조 어필각석
태조 어필각석

조각

태조 어필각석

太祖御筆刻石

  • 유물번호

    창덕6642
  • 연대

  • 재질

    석회질 대리암(회백색)
  • 크기(cm)

    세로: 31.2~31.4, 가로: 42.9~43.0, 두께: 8.0~8.3

첨부파일 :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태조 어필각석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제작년도: 태종 1년(1401)

조선을 세운 태조가 딸인 숙신옹주(淑愼翁主)를 위해서 집을 지어주고 그 소유권을 확증지워 주기 위해서 만든 문서를 돌에 새긴 것으로 정확한 명칭은 숙신옹주가대사급성문(淑愼翁主家垈賜給成文)이다. 태조의 자필이라고 하는 원본(原本)도 현재 전하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각석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태조대왕어필
건문(建文) 3년 신사(辛巳, 1401) 9월 15일. 첩의 몸에서 난 딸 ‘며치(旀致)’에게 문서를 만들어 주는 일로 말하자면, 비록 나이가 어리고 첩의 소생이지만 내 나이 앞으로 칠십을 바라보는데 내버려 둘 일이 아니다. 동부(東部)에 속하는 향방동(香房洞)의 빈 터는 작고한 재상 허금(許錦)의 집터인데 잘 다듬은 주춧돌과 함께 사들이고 재목(材木) 등은 하인을 시켜서 베어와 집을 지은 것이다. 본채 두 칸은 앞뒤 툇마루로 이어진 것인데 기와로 덮었다. 동쪽으로 붙여 지은 집 한 칸은 기와로 덮고, 부엌 한 칸은 기와로 덮고, 주방(酒) 세 칸은 풀로 덮고, 창고 세 칸은 앞뒤 툇마루로 이어진 것인데 기와로 덮고, 누다락으로 된 곳간 두 칸은 풀로 덮고, 안 사랑 네 칸은 풀로 덮고, 서방(西房) 두 칸은 앞 뒤 이어진 툇마루로 풀로 덮고, 남쪽으로 세 칸은 앞만 마루로 풀로 덮고, 또 누다락으로 된 창고 세 칸은 기와로 덮었다. 모두 스물 네 칸 등을 교막하고 아울러 본 문서도 함께 주는 것이다. 영영토록 거주하되 후일 특별한 바나 사정이 있거든 이 문서 안의 사연을 가지고서 관청에 알려 변별할 것이다. 자손이 대대로 가질 것이며 오래도록 거주할 일이다.
태상왕

관련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