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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
옥당
玉堂
-
유물번호
창덕20976 -
연대
-
재질
나무 -
크기(cm)
세로: 65.5, 가로: 146.0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옥당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제작년도: 1699년
창덕궁 홍문관에 걸었던 편액(扁額)으로 1699년(숙종 25) 당시 홍문관 응교(應敎)였던 김진규(金鎭圭, 1658~1716년)의 글씨이다. 옥당은 홍문관(弘文館)의 다른 이름이다. 사헌부 · 사간원을 합쳐 양사(兩司)라고 하는데 여기에 홍문관을 합해 삼사(三司)라고 불렸다. 세종 때 주로 경연(經筵)의 업무를 하던 집현전이 세조 때 사육신(死六臣)사건으로 폐지되었다가 성종 때에 이르러 홍문관으로 부활하였다. 학술 기관으로 왕의 자문에 응하였으며 양사와 함께 왕권을 견제하는 역할도 하였다.
창덕궁 홍문관에 걸었던 편액(扁額)으로 1699년(숙종 25) 당시 홍문관 응교(應敎)였던 김진규(金鎭圭, 1658~1716년)의 글씨이다. 옥당은 홍문관(弘文館)의 다른 이름이다. 사헌부 · 사간원을 합쳐 양사(兩司)라고 하는데 여기에 홍문관을 합해 삼사(三司)라고 불렸다. 세종 때 주로 경연(經筵)의 업무를 하던 집현전이 세조 때 사육신(死六臣)사건으로 폐지되었다가 성종 때에 이르러 홍문관으로 부활하였다. 학술 기관으로 왕의 자문에 응하였으며 양사와 함께 왕권을 견제하는 역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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