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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보
선조계비 인목왕후 상시호 금보
宣祖繼妃 仁穆王后 上諡號 金寶
-
유물번호
종묘13599 -
연대
1632년(인조10) -
재질
금속 -
크기(cm)
세로: 10cm, 가로: 10cm, 높이: 6.2cm
첨부파일 :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선조계비 인목왕후 상시호 금보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제작년도: 인조 10년(1632)
보문내용: 光淑莊定 仁穆 王后之寶
어보에는 왕과 왕비의 덕을 기리는 존호(尊號)와 돌아가신 후 공덕을 칭송하는 시호(諡號)등을 새겼는데 추가로 존호나 시호를 올릴 때마다 어보를 새로 제작하였다. 또 묘호(廟號)를 새길 경우에는 맨 앞에 새겼다.
인조 10년(1632)에 '인목(仁穆)' 이라는 시호와 '광숙장정(光淑莊定)'이란 휘호를 올리면서 만든 인목왕후의 어보이다. 대왕대비인 인목의 시호(諡號)는 "인을 베풀고 의를 행하는 것[시인복의(施仁服義)]을 인(仁)이라 하고 덕을 펴고 의를 지키는 것[포덕집의(布德執義)]을 목(穆)이라고 하였다." 숙종 때인 1697년에 편찬된 《종묘의궤》에 보면 인목왕후 금보가 '귀두결락 자면상완(龜頭缺落 字面傷刓)'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미 귀뉴의 머리가 떨어져나가고 보문의 글자가 닳아 손상을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선조 계비 인목왕후(1584~1632)의 성은 김씨(金氏), 본관은 연안(延安)으로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의 딸이다. 선조 35년(1602)에 왕비로 책봉되고, 선조 39년(1606)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보문내용: 光淑莊定 仁穆 王后之寶
어보에는 왕과 왕비의 덕을 기리는 존호(尊號)와 돌아가신 후 공덕을 칭송하는 시호(諡號)등을 새겼는데 추가로 존호나 시호를 올릴 때마다 어보를 새로 제작하였다. 또 묘호(廟號)를 새길 경우에는 맨 앞에 새겼다.
인조 10년(1632)에 '인목(仁穆)' 이라는 시호와 '광숙장정(光淑莊定)'이란 휘호를 올리면서 만든 인목왕후의 어보이다. 대왕대비인 인목의 시호(諡號)는 "인을 베풀고 의를 행하는 것[시인복의(施仁服義)]을 인(仁)이라 하고 덕을 펴고 의를 지키는 것[포덕집의(布德執義)]을 목(穆)이라고 하였다." 숙종 때인 1697년에 편찬된 《종묘의궤》에 보면 인목왕후 금보가 '귀두결락 자면상완(龜頭缺落 字面傷刓)'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미 귀뉴의 머리가 떨어져나가고 보문의 글자가 닳아 손상을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선조 계비 인목왕후(1584~1632)의 성은 김씨(金氏), 본관은 연안(延安)으로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의 딸이다. 선조 35년(1602)에 왕비로 책봉되고, 선조 39년(1606)에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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