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
선릉 정자각 중수 상량문
宣陵 丁字閣 重建 上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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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번호
고궁1105 -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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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질
종이에 먹 -
크기(cm)
세로: 67.3, 가로: 92.3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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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최석항(崔錫恒, 1654~1724년)이 지은 상량문으로, 그의 문집인 『손와유고(損窩遺稿)』 권12에 실려 있는 「선릉정자각중건상량문(宣陵丁字閣重建上樑文)」과 같은 글이다. 숙종(肅宗,재위 1674~1720년) 대에 오랜 세월 쇠락한 선릉(宣陵)의 석물과 정자각을 보수해야 할 필요성이 여러 번 제기되었고, 1706년(숙종 32년)에는 기울어진 정자각(丁字閣)을 중건하였다. <선릉 정자각 중건 상량문>은 이때 작성한 것이다.
선릉 정자각 중건 상량문(宣陵丁字閣重建上樑文)
엎드려 생각건대, 높은 뫼가 깎아지른 곳에 성종의 능침이 매우 편안하시고, 옛 정자각을 중수하니 보배로운 자리가 더욱 견고해지네. 예법에도 적절하고 때는 기다림이 있는 듯하네. 성종강정인문헌무흠성공효대왕(成宗康靖仁文獻武欽聖恭孝大王)께서는 성대한 천운을 타시고 막중한 임무를 이으시어 마음을 다 기울여 학문을 닦으니 문명의 교화가 천명되고 정신을 몰두하여 정사를 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뜻이 게으르지 않았네. 성대한 24년간의 정치교화와 늠름한 3대의 규모를 갖추니 달마다 의관을 꺼내 종묘로 옮기고 한남의 도성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네. 용이 서린 울창한 구릉엔 푸른 숲이 능침을 감싸고, 석물들이 그윽하고 엄숙하니 단청은 누각에 찬란하도다. 서리 이슬에 서글픔이 이니 우러르는 정성 더욱 간절하고, 제사를 철따라 올리며 쓸고 닦는 예절 빠뜨리지 않았네. 그러나 비바람에 휩쓸려 기둥과 처마가 무너짐을 면치 못하여 신령께서 편안치 못하시니 위로와 봉안의 조치가 참으로 급박하고 나라의 재물이 풍족치 못하더라도 수선하고 깁는 방도를 어찌 늦추랴. 옛 제도를 따라서 경영하여 터를 더 넓히지 않고, 유사(有司)에게 명해 감독케 하니 일이 번거롭지 않네. 풍성하고 간략한 절차가 합당하니 공검(恭儉)의 덕에 부합하고 오르내리는 신령이 계신듯하여 흡사 목소리가 들리는가도 싶네. 아름다워라 왕비의 무덤이 나란히 존귀하고, 찬란하도다. 사당의 모습이 다시 빛나네. 산천이 맑은 빛을 발하니 체제와 형세가 더욱 높아지고, 용마루와 서까래가 날듯하니 기상이 더욱 아름답네. 자리와 안석을 엄정하게 베풀어 사계절의 제사에 대비하고, 주렴과 섬돌을 그윽히 우러러 모든 신령의 가호에 호응하네. 이제 송축의 글을 지어 긴 들보를 부축해 드노라.(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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