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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인장 만기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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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보

헌종인장 만기여가

憲宗印章 萬幾餘暇

  • 유물번호

    창덕7951
  • 연대

    헌종연간(1834~1849)
  • 재질

    석제
  • 크기(cm)

    가로: 4.5cm, 세로: 4.5cm, 높이: 8.8cm

첨부파일 :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헌종인장 만기여가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헌종(憲宗, 재위 1834~1849)이 시나 그림 등 개인적인 여가를 즐기는 데 사용한 인장이다.
헌종은 조선 제24대 왕으로 이름은 환(), 자는 문응(文應), 호는 원헌(元軒)이다. 순조의 손자로서 효명세자의 아들이다. 8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정치적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23살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조선왕실의 인장 예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 중 한명으로, 서화감상과 수집을 즐겼으며 금석학에 조예가 깊었다. 특히 김정희의 글씨와 그림을 아꼈다. 헌종은 한()대 고인(古印)을 비롯해 명()대 대표적인 문인 전각가 문팽(文彭, 1498~1573), 표암 강세황(姜世晃, 1713~1791),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이재 권돈인(權敦仁, 1783~1859) 등 조선의 명사들이 사용하던 인장 등을 수집하고 감상하였으며, 스스로도 많은 개인용 인장을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
만기여가"'만 가지도 넘는 왕의 정무(政務) 중에 잠시 쉬는 겨를'을 의미한다. 헌종은 정무로 바쁜 와중에도 시나 그림으로 여가를 즐겼는데, 이러한 뜻의 만기여가 인장을 개인적 목적으로 즐겨 사용하였다. 인장 외부에는 구름 속의 용을 표현하였다.

관련 소장품 :향천심정서화지기(香泉審定書畵之記) 고궁1994, 우천하사(天下士) 고궁1995, 쌍리 고궁1996, 연향 고궁1997, 춘화 고궁1998, 보소당인존장 (좌)창덕25696 (우)창덕25697, 보소당인존 (위)고궁2514 (아래)고궁2523. 헌종은 자신이 일상생활을 하던 사적인 공간인 창덕궁의 낙선재에 김정희의 글씨를 곳곳에 걸어두었고, 허련(許鍊, 1808~1893)과 같은 중인 서화가들을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또한 낙선재에 보소당(堂)을 마련하였다. 보소당에는 헌종을 비롯한 조선왕실 에서 수집한 인장들을 보관하였는데, 인장 보관을 위한 보소당인존장을 두고, 인장을 모아놓은 책자인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을 발간하였다. 헌종의 개인인장을 비롯한 다수의 인장들이 1904년 화재로 소실되자, 고종은 화재로 잃거나 손상된 인장들을 「보소당인존」을 토대로 모각하도록 하였다. 이때 만들어진 인장은 헌종대부터 내려오던 인장과 함께 덕수궁에 보관되어왔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5점의 인장은 헌종대 부터 내려오던 인장으로, 외국으로 반출되었다가 2014년에 환수되었다. 이들은 '만기여가'와 같이 헌종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한 인장으로 향천심정서화지기(香泉審定書畵之記), 우천하사(友天下士), 쌍리(雙嫡), 연향, 춘화(春華)이다. 향천심정서화지기는 헌종이 서화를 감상하고 찍었던 인장이다. 향천은 헌종의 호이다. 우천하사는 세상의 선비와 벗한다는 뜻으로 동물이 앉아있는 모양으로 조각하였다. 쌍리는 보소당인존에 송선화옥인(宋宣和玉印) 이라고 부르고 있는 인장으로, 중국 북송대 휘종이 사용한 옥도장을 말한다. 휘종은 서화를 수집한 인물로 옛 서화를 모아 『선화서화보』를 발간하였는데, 쌍리는 이 화보에 수록된 수장인 중 원형인을 모각한 것이다. 벼루의 향기라는 의미의 연향 인장에는 손잡이에 거북 모양을, 그리고 봄의 꽃이라는 뜻으로 춘화 인장에는 구름 형상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여러 종류의 『보소당인존』을 소장하고 있다. 이 중에서 3책으로 구성된 인존의 경우, 제 1책에 보소당에 수장되어 있던 명청대의 전각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제 2책에 헌종이 애용하던 인장이, 제 3책에 김정희와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등 다양한 명사들이 사용했던 인장과 사구인(詞句印)이 수록되어 있다. 붉은 먹으로 날인하였고 양각 및 음각의 형태가 모두 보이며, 두 글자부터 수십 글자를 새긴 인장들이 다양한 형태로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 편찬 과정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편자와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표제에 창덕궁인보(昌德官印譜)라 쓰여진 것으로 보아, 본래 창덕궁에서 소장했던 소장본으로 추정된다. 보소당 인장을 보관했던 보소당인존장은 목제 서랍장 1쌍으로 각각 10개씩의 서랍이 들어가도록 제작되었다. 양쪽으로 장을 열면 각 서랍에 보관된 인장에 대해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문 안쪽에 종이를 붙여 보관 인장에 관한 정보를 적어두었다. 첫 번째 서랍장에는 전집(前集), 두 번째 서랍장에는 후집(後集)이라고 새기고 책에 실린 순서대로 인장에 번호를 매겨 보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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