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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인화문 ‘군위인수부’명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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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인화문 ‘군위인수부’명 대접

공예

분청사기 인화문 ‘군위인수부’명 대접

粉靑沙器印花文‘軍威仁壽府’銘大楪

  • 유물번호

    고궁1004
  • 연대

    15세기
  • 재질

    분청
  • 크기(cm)

    높이: 11.8cm, 구경: 14.8cm, 저경: 7.8cm

첨부파일 :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분청사기 인화문 ‘군위인수부’명 대접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15세기에 제작된 분청사기 발이다. 그릇 안팎에 인화문(印花文)으로 장식하였다. 내면 구연부에는 간략한 초문대(草文帶)를 두르고 그 아래로 연권문(連圈文)을 빼곡하게 장식하였다. 대접의 안 바닥에는 두 줄의 횡선을 두르고, 그 안에 국화절지문(菊花折枝文)을 인화장식하였다. 안 바닥 가장자리에는 연권문대(連圈文帶)를 배치하였다. 외면 구연부에는 뇌문대(雷文帶)를 두르고 그 아래에는 연권문(連圈文)을 촘촘하게 배치하여 빈틈없이 장식하였다. 외측면 중단에 간격을 두고 여섯 군데에 '金山長興庫納(금산장흥고납)'이라는 명문을 백상감(白象嵌)하였다. 외면 하단에는 연판문을, 굽외면에는 뇌문대를 둘렀다. 전체적으로 무늬를 단정하고 정성스레 인화(印花)한 공들인 작품으로, 15세기 중ㆍ후반의 특징인 촘촘한 집단연권문의 최상기 모습이 잘 나타난다. 경상도 금산에서 제작하여 장흥고에 공납되었던 것이며, 장흥고는 고려 충렬왕 34년에 설치되어 조선시대에도 오랜 기간 존속했던 관청으로 왕실 용품을 조달ㆍ관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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